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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 관리자
  • 2017-05-30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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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멀리 타국에서 로니(가명)

 

 

 

저는 2004년도 7살에 어머니를 따라 중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에 와서 13년간 불법체류자로 생활을 한 학생입니다.

 

학생으로서의 불법체류자란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마치 제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도 누릴 수 없는 것만 같았고 언제나 제 자신을 감옥에서 탈옥한 탈옥수처럼 느꼈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경찰은 나의 편이 아니었고 언제 어디서 잡힐지 모르는 불안감과 누구에게 신고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저는 한국인처럼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으며 제 신분을 숨기고 다녔습니다. 저에게 제일 절망적인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학생으로서 꿈을 향해 도전도 해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법체류자란 마치 온 세상이 저의 편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김공장에서도 일하시고 옷공장에서 일하시고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집 밖으로 나서셨습니다. 때문에 저는 집에 혼자 속박되어 살아 왔습니다. 속박된 생활에 그 당시에 친구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어느 날 자주 다니던 슈퍼가게 사장님에게 그의 아들을 소개 받았습니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놀다 보니 한국어 실력이 빠르게 성장을 했습니다. 노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지만 그 친구는 학교와 학원 때문에 자주 놀지를 못했습니다. 그 친구와 놀기 위해 그 친구의 학교 정문에서 3시간씩 자주 기다렸습니다. 그를 기다리면서 저는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 언제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학교를 가야 할 나이는 다 되었지만 외국인이라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어머님은 일 때문에 바쁘셔서 밖에서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많이 통통해져서 태권도 도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태권도 사범님도 제가 외국인이라서 한글과 숫자를 가르쳐 주시며 관심을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태권도에서 특히 진급할 때마다 제 띠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최강의 띠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빨강띠에서 멈추었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제 길을 가로막아 섰습니다. 친구들은 품띠를 얻고 목판을 멋있게 격파하며 다양한 멋진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 어린 마음에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태권도 생활이 끝났습니다.

 

한 교회의 소개로 초등학교13살에 4학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나이로는 5학년부터 다녀야 했지만 4학년이란 공백 기간에 한 단계 아래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처음에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적응해 나가면서 제가 원하던 좋은 친구들이 생기고 이제는 집에서 속박될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생활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제가 외국인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잊어가면서 말이죠.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말 고시원에 살던 저는 전화를 통해 어머니가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세상이 캄캄 했습니다. 불법 체류자인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편지를 써주며 도와줬습니다. 교회에 계시는 변호사님도 노력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머님은 감옥에 갇혀 계셨고, 저는 그 동안 목사님의 가정집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의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밥을 해주시고 여러 가지를 챙겨 주셨습니다. 어머니 같았던 목사님의 사모님, 장난꾸러기 동생 같은 목사님의 아들, 야단을 치고 맴매를 주셨던 아버지 같은 목사님,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느껴 볼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하며 어머님이 풀려날 수 있게 기도도 드리며 기다렸습니다.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제 교육의 의무 때문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6개월간 있었던 어머니를 보니 너무 기쁘고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에서는 벌금까지 내주셨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교회 사람들 말고도 저를 도와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축복 이었습니다.

 

새 출발에 어느덧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교와 진로를 고민할 시기입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학생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그런 고민 속에 함께 나눌 친구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예술과 다문화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와 관련된 행사나 대회에 참여도 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졸업이라는 운명의 벽에 맞닥뜨렸고 수많은 노력과 도움 속에서도 저는 결국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꿈을 향해 날개 짓도 못해보고 불법체류자로 남는 것이 불법체류자 학생의 결말입니다. 수많은 도움 속에서도 핵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결국 저와 엄마였으며 이에 저는 자진출국을 선택했습니다. 불법체류자로서는 앞으로의 꿈을 꿀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을 떠나기 전에 친구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기념품 사오라는 장난식의 인사도 있었고 불법체류자인 저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시던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법을 중시하고 딱딱하게만 보이던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을 느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이야~ 로니는 외국인 아니라 한국인이네!” 저는 항상 그런 말을 애써 부정했습니다. 그저 너무나 익숙해진 대한민국에 살다보니 그런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타국에 있는 지금, 저는 그 말을 부정 할 수가 없습니다.

 

제 고향은 대한민국입니다.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이 말이 참 와 닿습니다. 13년간 저에게 선생님과 친구들, 가족 같은 고마운 분들이 있기에 떳떳한 어른이 되어서 언젠가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에 다시 돌아와 그 고마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 때까지 모두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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