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배경 청소년 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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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뉴스레터 오피니언

Writer
관리자
Date
2013.04.29
Views
1421


* 5월 뉴스레터 오피니언

 

이주배경아동청소년 부모상담

 

김민화

한북대학교 영유아보육학과 교수

독서치료전문가·이야기치료전문가

 

“어휴, 다문화부모를 만나는 건 힘들어요.”

아이들을 주로 맡고 있는 필자가 다른 상담관련 전문가에게 부모의 개별상담을 의뢰하고자 할 때 들었던 말이다. 그가 ‘힘들다’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된 것은 부모상담 동안 이주배경부모와 상담가 사이에 있는 문화, 언어, 아이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를 조율해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예상하기 때문일 게다. 비단 이주배경을 가진 부모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을 대하는데 있어서도 상담자 자신이 이주배경 내담자와의 경험이 없는 경우에는 단순한 정보제공을 넘어 그들의 보다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개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에 ‘힘들다’, ‘힘들 것이다’라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부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전문가를 개별적으로 만나는 것은 힘들고 두려운 일이 된다.

 

문제는 힘이 들기 때문에 꼭 필요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부모의 문제와 결합된 부분을 다루어야 함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주배경을 가진 아동청소년을 위한 교육이나 상담 서비스의 제공이 늘어감에도 현재의 서비스 수준은 부모와 자녀를 독립적인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양한 정부부처의 소속기관과 봉사단체에서 이주배경부모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부모역할훈련, 부모-자녀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법, 영양관리, 학습지도 등 기술훈련이나 부모교육, 일반적인 정보제공이 주를 이룬다. 더구나 자녀의 문제보다는 그들 자신의 국내 적응을 위한 법률상식, 문화인식, 경제관리, 취업 및 창업 준비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이 더 인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녀에게도 부모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제공되지만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기술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이주배경아동청소년들에게도 더 시급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학업기술 및 학교적응, 또래관계개선, 직업훈련 등 소위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인 것이다.

 

최근 들어 이주배경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심층적인 심리상담의 필요성이 더욱 크게 대두되고 있으며 개별 아동청소년들을 위한 중장기 상담 또는 치료 서비스들이 제공되고 있다. 따라서 아동청소년의 상담 또는 치료의 과정에 그들 부모를 개입시키거나 부모로서의 입장을 바탕으로 한 부모의 개별 상담이나 치료의 필요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의 제약은 물론 양방이 가진 ‘두려움’이 이주배경부모와 전문가의 만남을 쉽지 않게 만들고 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소수를 위한 장기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의 확보도 이주배경부모 상담이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책과 예산의 문제보다는 이주배경을 가진 아동청소년의 부모 상담을 계획하는데 있어 어떠한 측면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주배경가정의 부모 또한 부모이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부모역할이 미숙하고 자녀에게 무척이나 무관심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인 한국의 일반가정에서 볼 수 있는 문제부모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심각성이지 문화적 차원에서의 심각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이주배경가정의 부모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

 

방글라데시에서 와서 한국인 여성과 결혼 해 국적을 취득하고 살고 있는 한 아버지는 자녀가 피부색으로 인해 또래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음에 분노를 표현한 적이 있다. 화를 내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인종차별 병폐를 욕했지만 사실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중국에서 결혼이민을 온 어머니는 자녀의 학습지도를 하는데 있어 한국의 일반가정 어머니들만큼 뛰어난 정보력과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로 고민하기도 했다. ‘대치동 엄마’가 일반적인 어머니들의 표준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이 어머니로서의 자격이 있고 없음에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예로, 필리핀에서 결혼 이주해 한국국적을 얻었지만 한국인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서 아이를 기르고 있던 어머니는 이주노동자 새남편의 입국이 거절당해 재혼에 실패하고 결국 생이별 상태에 있었다. 그녀는 필리핀에 두고 온 자녀를 떠올리며 온 가족이 함께 살고 싶지만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사람대접 받으며 살기 어렵다’며 캐나다로의 이민을 계획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 현재는 그나마 벌이가 있으며 익숙한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어린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이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꿈을 가지지 못했다. 이주배경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저마다의 좌절스러운 사연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좌절들이 우리 사회에서 기대하는 유능한(?) 부모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자녀를 방치하고 비일관되고 안정성 없는 양육과 부모-자녀관계를 형성하도록 한다. 이것이 자녀의 건강하고 적응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기술적인 교육이나 지원프로그램으로 해결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이주배경부모의 어려움은 사회문화적인 제약을 개인의 문제와 동일시하는데서 더욱 커진다. 즉,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의 문제를 자신의 능력 또는 정체성과 결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주배경부모와의 상담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사회문화의 영향력 또는 제약과 개인의 정체성을 해체시키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해체는 이주배경부모가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의 긍정적인 측면들을 더욱 풍부하게 살려내는 입장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자신은 무력하고 나쁜 부모가 아니라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주배경부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아이는 21세기에 나라와 나라를 잇는 다리가 될 거에요. 엄마나라도 알고 아빠나라도 아는...”이라는 일본출신 어머니의 말에 함께 있던 다른 출신국의 모든 어머니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주배경부모들에게는 자기 자신과 자녀에게 늘 함께 하지만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긍정적인 특성, 사건, 결과들을 새롭게 볼 수 있고 이를 튼튼하게 쌓아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이야기의 장이 필요하다.

 

다시 상담가가 가질 수 있는 ‘두려움’으로 돌아가 보자. 상담가의 두려움 역시 그동안 매스컴이나 각종 연구결과들을 통해 만들어진 편견 아닌 편견 이야기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것일 수 있다. 이주배경부모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그동안 자신이 느꼈던 사회문화적 제약과 부정적 기대가 상담가와의 만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일 수 있다. 여기서도 해체가 필요하다. 양자의 만남에 ‘두려움’이 주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두려움이 생성된 맥락을 해체시키는 것을 통해 벗어날 수 있다. ‘두려움’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이주배경부모와 상담가의 만남은 양자 모두에게 ‘힘든’ 이야기가 아닌 ‘살만한’ 이야기들을 만들게 될 것이다.

 

이제 이주배경가정의 부모와 자녀를 만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를 바란다.

“어휴, 다문화부모를 만나는 건 힘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