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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이크로어그레션, 우리는 차별 (당)합니다. (이승재 수석논설위원, 아주경제신문)

Writer
관리자
Date
2021.04.29
Views
1692

 

마이크로어그레션, 우리는 차별 (당)합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전 세계 인구 78억7400만 여명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릅니다. 심지어 내 몸의 오른쪽과 왼쪽이 똑같지 않습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과학계의 정설입니다.

  사람마다 다른, 그 다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손, 열 손가락을 다 펴 보세요. (이렇게 못하는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손가락을 사이사이 겹쳐 깍지를 껴보세요. 어느 엄지손가락이 위에 있습니까? 왼손 엄지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 아니 오른손 엄지가 올라가는 분도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반대로 해보세요. 좀 전과 다른 방향으로 깍지를 끼면 처음과 반대의 엄지 손가락이 위로 올라가지요.

 이렇게 깍지를 끼는 방식이 사람 모두 다 똑같지 않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다 다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엄지손가락을 위에 올리지는 않습니다. 이게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될까요? 자기와 다른 엄지를 올렸다고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만약 이와 비슷한 원인과 이유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난하면 그게 바로 차별이 아닐까요. 자기 몸도 좌우가 다른데 사람들 저마다 서로 다른 걸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피부 색, 생김새, 말투 등이 다른 걸 좋아하지 않고 차별합니다. 일부러, 의식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이지요. ‘나는 절대 차별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라고 스스로 확신하는 이들도 미처 생각하고 알지도 못하는(부지불식·不知不識) 중에 이런 차별을 하기도 합니다.

 눈(시선), 냄새의 반응, 일상의 말로 하는 미세한 차별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고 합니다. 마이크로(micro)는 ‘매우 작은’, 어그레션은 ‘공격’이라는 뜻이니까 그 둘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이주배경이 다르거나 인종, 종교, 옷차림 등에 따라 미세하게 공격하는 차별을 말하지요.

 산책하다 만나는 ‘다른 사람’을 위아래로 쳐다보거나 찡그리는 눈, 같은 공간에서 냄새가 다르다며 자리를 옮기는 행동도 마이크로어그레션입니다.

 요즘 코로나19 상황에 미국, 유럽 일부 등 백인이 다수인 국가에서 아시아인을 상대로 무차별 폭행, 총기 살인 등 증오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외국 생활을 하면 이런 폭력적인 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어그레션으로 보면 ‘안 당해 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미국에서 잠시 지낼 때 일입니다. 어느 식당에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들어가자마자 안쪽 테이블에 모여 있던 백인 중년 남성들 대여섯명이 일제히 보냈던 시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피해자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에 살든 외국에 살든 많은 한국인들은 인종차별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종’은 그 어느 인종보다 훨씬 더 세분화해 외국인을 차별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특정 피부색은 환영하고, 그와 반대인 사람에게는 차가운 경우가 적지 않지요. 환영하는 눈빛과 멸시, 경멸의 눈초리는 하늘과 땅 차이, 크게 다릅니다.

 눈을 전공한 안과 전문의들은 “눈은 보기도 하지만 말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즉 눈빛, 눈동자와 눈썹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드러낸다는 겁니다. 요즘 특히 마스크를 하루 종일 쓰기 때문에 눈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기능이 더 진화하고 있는 걸 실감합니다.

 눈으로 말하는 사람은 잘 몰라도 상대방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지 친절한 웃음이 나오는지 마주치는 상대방은 0.1초, 순간적으로 간파하지요. 미국 식당에서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피부색뿐 아니라 특정 지역이나 종교를 드러내는 옷차림을 한 이들에 대한 시선도 그렇습니다. 동네 공원에 한두 번 나왔다가 이내 사라지는 ‘동네 이웃’인 외국인 노동자(IT기업의 프로그래머이든 공장노동자이든)들은 산책을 하며 마주치는 한국 사람들의 눈빛을 감당하기 버겁다고 호소합니다.

 냄새에 따른 차별도 있지요. 유전적 특성이나 나라 별 음식 문화 때문에 몸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게 바로 몸내, 체취입니다.

 허물없이 지냈던 제 외국인 친구들은 고춧가루와 양파, 마늘이 뒤섞인 한국인의 땀 냄새를 참기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친구가 아닌 외국인들이 비행기나 지하철에서 고개를 돌리는 일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저 역시 그랬더군요.

 얼마 전 한 부산의 다문화학교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방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아시아 이주배경 어린이가 교실에 전학 온 첫날 고유의 체취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님이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학생들과 선생님은 그 전학생을 배려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수업을 계속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옆 자리 짝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자 모두가 웃으며 창문을 열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더군요. 어른들은 무심결에, 의도적으로 하지만 어린이, 청소년들은 이미 마이크로어그레션이 좋지 않다는 걸 이미 깨닫고 실천했던 거죠.

 아시아인 증오범죄에 대해 SNS 등 온라인에는 ‘아시아인 증오를 그만두라’는 해시태그(#StopAsianHate)를 다는 캠페인이 한창입니다. 여기에 하나 추가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 한국인이 당하면서도 하는 미세한 차별, 증오에 대해 ‘나는 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는 겁니다. 우리 모두 #StopAsianHate에 이어 #IdoNotHate(나는 증오하지 않는다)를 나란히 적는 겁니다.

 차별하지 않는 사람, 증오를 막겠다는 좋은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대한민국에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드디어, 마침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