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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문화사회와 세계시민: 다문화사회,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차윤경 신임 이사장 / 한양대 명예교수)

  • 관리자 (rain)
  • 2021-09-27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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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여자와 세계시민의식?>

  얼마 전 약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내전에 개입해 왔던 미군의 철수가 진행되는 와중에 탈레반 무장 세력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수도 카불을 점령해버렸다. 탈레반의 보복이나 강압적 이슬람 원리주의 통치를 피해 국외로 탈출하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뒤엉킨 공항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강경 테러집단의 자살폭탄 테러로 이백여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심지어 날아오르는 비행기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의 몇몇 나라가 안간힘을 다했음에도 이들 중 운 좋게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은 탈출시도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한국 정부 또한 공군기를 파견해 이른바 “특별기여자” 390명을 대피시키는 긴급 작전을 수행하였다. 주로 아프가니스탄의 한국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병원, 한국직업훈련원 등에서 일했던 현지인들의 한국 이송작전이었다. 이들이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자 임시 숙소로 정해진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는 환영 현수막이 내걸렸다. 또한 이들에 대한 지역 주민의 환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농산물 주문, 구호품, 기부금 등이 전국에서 쇄도했다. 한국 국민들의 호의적 반응이 다소 의외였지만 분명 가슴 뭉클한 모습이었다. 이 모두가 근대적 국민국가 체제가 형성된 이래 세계에서 처음으로 저개발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 사회의 선진적 제도와 국민들의 성숙한 세계시민의식 덕분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특별기여자와 난민의 기준>

  우리는 불과 3년 전 제주공항에 내린 561명의 예멘 난민들을 “가짜 난민,” “세금 도둑,”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며 배척했던 부정적 여론을 기억한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한시적으로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이들은 지금도 정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어려운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난민심사 면제, 생계비 지원, 한국사회 적응 교육 프로그램 제공, 취업지원 등을 받게 되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에 비하면 뭔가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난민”이다. 그들이 수년간 한국 관련 기관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이것이 곧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만한 “특별한 기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계 당국은 이들 대부분이 의사나 간호사, IT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 인력이며 거의 절반이 10세 이하의 영유아나 아동이라고 애써 강조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외국으로 탈출하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발이 묶인 수많은 전문 인력들의 눈엔 이들은 운 좋게 한국 관련 기관에 일자리를 얻은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직장인 가족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외국의 수많은 한국 관련 기관에 근무하는 “특별기여자”들이 한국으로의 이주를 원한다고 해서 이들 가족을 수송기까지 파견해서 데려오지는 않는다. 현재 이 순간에도 한국의 산업현장과 농어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에 영주할 기회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들에겐 사랑하는 가족을 동반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국제법상 난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좀 더 당당하게 이들이 난민이라고, 세계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천명하지 못하는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 등의 사유로 인한 임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외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인도적 구호조치와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은 유엔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한국에 대한 기여 여부가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에 대한 환대나 예멘 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배척을 정당화한다면 인류애와 인간의 존엄성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설마 우리가 사회적 기여 정도가 낮은 노인이나 장애인, 장기 미취업자 등을 “세금 도둑”이라며 배척하고 차별하는 “야만적”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잠재적 특별기여자 : 이주배경 주민>

  따지고 보면 현재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이주노동자, 중도입국자녀, 미등록 이주아동 등 다양한 유형의 이주배경 주민들 역시 어떤 면에서는 한국사회의 잠재적 특별기여자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분명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것이다. 또한,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백만 한민족 동포들이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이들 역시 세계를 한국사회 안으로 들여옴과 동시에 세계를 향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연결망을 더욱 확장해 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주배경 주민들은 세계 최저 출산율과 인구절벽에 직면한 한국사회의 중요한 미래 인적자원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주배경 주민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각은 인도적 차원의 고려나 실용적 효용성 계산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어떤 모습의 사회를 만들고,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하는지와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피부색이나 출신 국가를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사회라면 종교나 이념, 성, 계층, 연령, 장애 등 다양한 임의적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일 수 있다. 또한, 이런저런 이유로 끊임없이 누군가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람은 이미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일을 멈춘 사람이며, 그 자신 역시 그러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땅에 사는 이주배경 주민들은 한국사회의 선진성과 그 구성원들의 인간적 품격 및 성숙도를 측정하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일 수도 있다.

 

<다문화사회와 우리의 준비>

  전 지구화와 사회 전반의 다원화 내지 다문화화는 피할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다. 한국사회에도 이미 이주배경 주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5 퍼센트를 상회한다. 이와 같은 인종적 다양성에 더해 사회계층, 세대, 지역, 성별 등에 따른 문화와 정체성의 다원성 역시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나아가 지구화의 심화는 인구의 유동성 증가와 상호 접촉을 가속화함으로써 사실상 지구 상의 전 국가를 하나의 생활공동체이자 다문화 사회로 변모시키고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인종, 문화, 성별, 계층, 언어 및 종교적 배경을 지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상호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약 2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바이러스 사례가 보여주듯 기후변화, 국제범죄, 환경오염, 전염병 등으로 인한 피해는 국경, 인종, 민족, 종교, 성별, 언어, 계층 등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오로지 전 지구 차원의 연대와 협력에 의해서만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이와 같은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와의 상호 호혜적이고 조화로운 관계 형성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건강한 존립기반과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존재이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한국 사회의 다원화와 다문화화는 화합과 창조의 기름진 토양이 될 수도, 혹은 갈등과 분열, 그리고 자기 파괴의 끝없는 악순환의 늪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전히 “외국인 정책”이나 “다문화가족 정책”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한국의 다문화 관련 정책은 보다 포괄적인 “다문화 사회 정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이나 다문화진흥법 등을 조속히 제정함으로써 한국사회 전반의 제도와 관행을 다문화친화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 역시 시급한 일이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이미 5천여 년 전 “홍익인간”이라는 원대하고도 숭고한 통치이념을 내걸고 어쩌면 인류 역사 최초의 다문화 국가를 건설한 바 있다. 21세기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반드시 꽃 피워야 할 문화적 DNA가 바로 이것이다.

 
 
 
 < 차윤경 한양대 명예교수님은 지난 7월 30일 우리 재단의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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